큐 파인드와 치즈는 양홍색의 옅은 이들을 타고 암시장으로 가고 있었다. 치즈를 태운 것은 ‘13호-에디’, 비행접시 모양의 몸체에 경찰 모자를 쓰고 있었다. 큐 파인드를 태운 것은 ‘15호-지미’, 두툼한 입술에 멍청한 모양의 눈을 한 사족 보행 로봇이다. 두 옅은 이들은 불가사의한 힘으로 불꽃을 뿜으며 창공을 가르고 있었다.
“치즈 씨, 들리시나요?”
“응, 무슨 일이야?”
씰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치즈가 답했다. 모자렐라를 벗자, 양의 모습을 한 청록빛 옅은 이가 그 안에 있었다. 씰의 옅은 이였다. 그녀는 의지색으로 무전을 전했다.
“일점산 방향을 집중적으로 조사해봤어요.”
“어땠어?”
“질투의 색채귀 총 열두 개체. 예전에 만난 적 있는 개체들도 감지되고 있어요.”
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다 입을 땠다.
“… 그리고 자영도 있어요.”
“이런… 그렇다면 여긴 파인드에게 맡기고 내가…!”
“우선 임무를 속행해주세요.”
“응?”
“자영에게 대규모 병력을 동원한 건 너무 무모해요.”
“확실히 그렇지.”
“누군가의 개입을 상정하고, 전력을 분산시키는 함정일 확률이 높아요.”
“…!”
“네, 당시와 비슷한 상황이죠. 그러니까, 반드시 함께하셔야 해요.”
“응. 알았어.”
그때 큐 파인드가 소리쳤다.
“거의 다 왔어. 수 분 내에 도착해!”
“씰, 뭔가 일이 있으면 연락할게.”
“네, 알겠어요.”
치즈는 씰의 옅은 이를 도로 모자렐라에 집어넣은 후, 챙을 가다듬으며 썼다.
어두운 초록빛의 영역이 멀리서 보이기 시작한다.
“좋아. 먼저 티틀을 찾아. 네가 보이는 곳에서 대기하고 있을게.”
“못 미더운데… 씰을 생각해서라도 그렇게 해주지!”
큐 파인드가 지미의 등에서 내리며 철컥 소리를 냈다. 이윽고 큐 파인드는 영역을 감추고, 발과 손에서 불을 뿜으며 더욱 깊숙이 침투하기 시작했다.
그 영역에는 여러 구조물들이 보였다. 앙상한 나무, 크고 작은 바위 더미, 끝을 알 수 없는 작은 구멍들. 그것들은 모두 어딘가 뒤틀려있거나 꺾여있는 듯한, 기분 나쁜 형상을 하고 있었다. 천연요새. 일반적인 색채들이라면 이 불쾌한 초록빛 영역에 발을 들일 생각조차 하지 않을 것이다.
“모두 어디 간 거야?”
큐 파인드가 구시렁거리며 지미의 속도를 늦췄다. 치즈와 에디는 그 뒤를 따라갔다.
지미에서 내린 곳에는 살짝 규모가 있는 구멍이 있었다. 그곳에서 큐 파인드는 티틀의 기운이 느껴지는 곳을 탐지했다. 문제는, 티틀의 기운이 여러 곳에서 포착되고 있었다. 그러다 그의 의지색을 떠올리고는, 흔적을 쫓아 이동하기 시작했다. 치즈 역시 에디에게서 내리고 큐 파인드를 조용히 따라갔다.
점점 밑으로 내려가자, 그곳에는 상당한 크기의 공동이 있었다. 공동에는 뒤틀린 듯한 형상의 한 건물이 있었다. 뾰족한 지붕, 좁고 긴 창문이 인상적인, 성당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큐 파인드과 치즈는 천천히 건물 내부로 들어갔다.
흔적이 안내하는 가장 가까운 곳, 거기엔 티틀의 식충 군단이 있었다. 녀석들은 넓은 천장으로 빠져나가려고 했지만, 모두 큐 파인드에게 불태워졌다.
다른 곳에도 식충들이 있었다. 계속 반복되는 같은 크기, 같은 양식의 방들은 몽중몽의 착각을 들게 하기에 충분했다. 식충들은 소각되며 고소하고 텁텁한 모래 탄내를 풍겼다.
“큐 파인드, 먼저 들어가.”
“알았다니깐.”
큐 파인드는 얼마 지나지 않아 티틀을 만날 수 있었다. 그는 원탁의 왼편에 다리를 꼬고 앉아있었다.
“아, 의자를 당겨올 걸 그랬네. 발 좀 올려놓으려 했는데.”
“티틀!”
“수호자가 여기에 무슨 일?”
“자영에게 나쁜 짓을 하려고 하잖아! 우리가 가만히 안 놔둬!”
“음, 딱히 그러려는 건 아닌데.”
티틀이 꼬여있던 다리를 풀며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는 발톱을 새우며 의지색을 발하기 시작했다. 강렬한 시타르 소리가 들려오며 티틀의 암시장은 살짝 황금빛에 휩싸였다. 티틀의 펼쳐진 날개와 손이 그 빛을 제한하며 도도한 분위기를 풍겼다.
큐 파인드는 곧바로 달려들어 티틀과 전투하기 시작했다. 티틀은 큰 힘을 들이지 않고 방어에 집중했다. 그는 중간 중간 식충을 발사해 날아오는 무쇠 주먹의 궤도를 틀었다. 식충들은 날카로운 이빨로 무장한 모래빛의 딱정벌레였다. 이빨이 어찌나 큰지 그 길이가 몸의 절반이나 되었다. 그러나 위협적인 식충의 턱도 단단한 강철 몸에는 흠집조차 내지 못했다. 큐 파인드는 빗나가는 궤적을 계산해 티틀에게 맹공을 퍼부었다. 기계적이라는 말이 아쉬울 정도였다.
“제법이네. 네 영역도 보고 싶은데, 나랑 충돌시켜보는 건 어떨까?”
“넌 이 정도로도 충분해!”
큐 파인드는 티틀의 식충을 전부 쳐낸 뒤 회전 발차기를 티틀에게 날렸다. 티틀은 거대한 식충을 소환해 피해를 최소화하며 뒤로 사뿐히 착지했다.
큐 파인드는 유연하면서 힘이 확실하게 실린 동작을 이어나가며 공방을 주고받았다. 내구도가 떨어지는 식충은 큐 파인드의 몸체와 마찰하는 순간 터져나가며 분진을 날렸다. 티틀은 그 점을 이용해 큐 파인드의 관절과 같은 틈새에 고운 모래를 넣어 구속을 시도했다. 큐 파인드는 이를 눈치채지 못한 채 싸움을 이어나갔다.
의지색을 계속 사용하는 티틀에 비해, 체력이 여유로운 큐 파인드의 쪽으로 승기가 기울고 있다. 큐 파인드는 약한 연격을 퍼부어 의지색을 저지하고, 피할 수 없는 일격을 날려 티틀에게 유효타를 냈다.
“뭐야, 겨우 이런 실력으로 날 상대하겠다고?”
큐 파인드가 웃으면서 다리를 번쩍 들어 올렸다. 그 순간 티틀은 의지색을 이용해 방심한 큐 파인드를 속박했다.
“윽! 언제 이런 걸 준비해 놓은 거야?”
“의미 없이 의지색으로 힘을 낭비할 이유는 없걸랑~”
티틀은 식충들을 불러모아 더욱 강하게 구속하기 시작했다. 큐 파인드가 옴싹달싹 못하자 티틀은 발톱을 갈며 천천히 다가갔다. 그때 싸움을 엿보던 치즈가 티틀의 배후에 나타났다. 치즈는 스커트에서 치즈 소스를 흩뿌려 티틀을 방해했다.
“막내를 건들게 놔둘 순 없지.”
“하하! 재밌네. 수호자가 둘씩이나 올 줄이야.”
뿌려진 치즈 소스들은 식충들이 먹어치워지며 순식간에 사라졌다. 티틀은 가소롭다는 표정을 지으며 거리를 벌렸다. 티틀은 점점 호승심을 느꼈고, 이윽고 그의 영역이 드러났다. 주변은 탄색빛으로 감돌았다. 큐 파인드는 몸을 고속으로 회전시켜 모래를 탈탈 털어냈다.
“치즈는 돕기만 해! 나 혼자서도 충분해.”
“알았어. 하지만 조심해. 녀석의 전력은 미지수라고.”
치즈와 큐 파인드가 태세를 갖추며 말했다.
“혼자서라니, 너희 둘 다 덤벼야 할걸?”
티틀도 자세를 잡았다. 이윽고, 세 색채는 본격적인 전투를 시작했다. 오로지 티틀의 영역에서 음악이 들려올 뿐이었다만, 수호자들의 감춘 영역에서도 조금씩 소리가 새어나오곤 했다. 뿅뿅거리는 소리가, 정신없는 소리가 교차하며 어지러운 분위기를 만들었다. 싸움의 여파로 휘날리는 영역 쪼가리들은 암시장의 구조물들을 엎고 박살 내놓았다.
큐 파인드가 유연하게 움직이며 발차기를 날리면, 치즈는 티틀의 감각을 흐트러트렸다. 직선적인 동작이었지만, 티틀에게는 아주 어지럽게 춤추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한 대, 두 대, 피해가 눈에 띄게 누적되어간다. 그러나 티틀은 계속해 가벼운 표정을 지으며 수호자들을 바라봤다. 치즈가 티틀의 급소에 발차기를 날리며 말했다.
“너, 의지색으로 이루어진 반쪽짜리군.”
치명타를 입은 티틀의 온몸이 탄색으로 변하더니, 작은 모래가 되어 바닥에 흩뿌려지기 시작했다.
“와, 정말 대단해. 이 기회에 말려들지 않은 건, 너희의 책사 덕분이려나? 내 계획에 차질을 만들 줄이야. 어쨌든, 좋은 싸움이었어.”
티틀의 말이 뒤로 갈수록 뭉개지다,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가 되어 끝을 맺었다.
“큐 파인드, 바로 티틀을 쫓는다.”
“잠시만! 방향을 알아야지!!”
“저걸 봐.”
치즈의 손이 가리키는 곳에는 아까 티틀의 분신을 이루던 식충들이 있었다. 식충들은 띄엄띄엄 열을 맞추고, 빠르게 한 방향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녀석의 의지색이 갖는 특징이야. 전에 상대해봐서 알지. 저 식충들은 반드시 본체에게 복귀해.”
“여기를 사수하는 건?”
“지금 우리가 이곳에서 얻을 건 없어. 빨리 출발해야 해.”
큐 파인드가 에디와 지미를 불렀다. 시간을 지체할 틈이 없었다. 그들은 성당의 높은 공동에 장식된 스테인드글라스를 깨고 등장했다. 치즈 일행은 착륙하는 옅은 이들에게 허겁지겁 점프해 자리를 잡았다. 이윽고 큐 파인드의 신호가 떨어지자, 그들은 여유 따위는 집어치운 속도로 구멍을 빠져나가며, 날아가기 시작했다.
“작전 실패네. 이러다간 큰 싸움이 될 것 같은데.”
티틀은 자신의 분신이 사라졌음을 느꼈다. 그는 영역을 감춘 채 다예람과 자영이 있는 곳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티틀의 계략은 전력의 분산. 그들의 힘을 쪼개어 고립시키고, 하나씩 제거해나가는 것. 그러나 씰의 탁월한 분석 능력으로, 그의 그림은 망쳐졌다. 그가 영역을 숨겨 씰의 감시에서 벗어난다 한들, 의지색의 특성을 아는 치즈에 의해 발각될 수밖에 없었다. 그는 힘을 담아 빠르게 날갯짓을 하기 시작했다.
잠시 뒤, 그의 앞에 일점산과 거대하게 솟은 수정벽이 모습을 드러냈다.
“정말 대단하시네요. 질 좋은 의지색을 이 정도 규모로 쓰실 줄이야.”
다예람이 마치 칭찬하는 듯한 어투로 자영에게 말했다. 곧이어 그녀는 숟가락을 어깨에 지고, 퀴스피드와 함께 접근해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런 건 저희에게 쓰셨어야죠.”
자영은 자수정 손톱을 새워 그녀와 치고받기 시작했다. 자영은 최대한 의지색을 사용하지 않고 방어적으로 접근했다. 반대로 다예람은 적극적으로 의지색을 사용하며 공격적으로 나섰다.
중간중간 퀴스피드의 검은 웅덩이가 나타나 촉수를 내뿜었다. 어지럽고 정신없는 연계에 자영은 가끔 작은 상처를 입었다. 급소를 노리는 공격은 유술을 이용해 가까스로 흘려내고 있었다.
티틀의 색채귀 선발대가 한눈에 다 보일 정도로 가까워졌다. 그들의 악취 역시 훨씬 더 고약하게 진동하고 있었다. 잠시 후, 반달모양으로 진을 친 열두 개체의 색채귀들이 전진을 멈췄다. 그들의 영역과 자수정 벽을 가르면서, 티틀이 날갯짓을 하며 모습을 드러냈다. 티틀은 큰 웃음을 지으며 천천히 지상에 발을 붙였다. 자영은 급하게 뒤로 물러났다.
“빨리 오셨네요.”
“계획에 차질이 생겼어. 녀석들이 작전을 간파했거든.”
“어떻게 하실거죠?”
“우선 계속해야하지 않겠어?”
티틀이 다예람 쪽으로 걸어오며 말했다. 자영의 평온한 눈이 순식간에 날카로워졌다. 눈을 찌푸리고 있는 자영을 향해 티틀이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오랜만이야 자영. 어? 근데 그 색채는 어디 갔담? 같이 있는 게 아니었나?”
“넌 몰라도 돼.”
“너답네.”
티틀이 크게 웃음지었다.
“눈치챘지? 중간 중간마다, 네가 걸어가는 방향을 일점산으로 틀어버렸어.”
“무슨 꿍꿍이지?”
“간단하잖아. 협상...”
“정말 허술하네. 연기도 적당히 해.”
“응?”
자영이 날카롭게 얘기했다.
“넌, 마음만 먹는다면 날 죽일 수 있었어.”
“음….”
“모를 것 같아? 네 계획은, 이전 암시장 소탕을 재현하는 것. 다만 이득을 보는 대상이 너로 바뀐 거지.”
“그래서?”
“네 위에서 하달된 명령인가 보지? 네 의지는 날 잡아먹는 걸 텐데.”
자영의 말을 듣자 티틀이 놀랍다는 듯 눈을 크게 뜨며 미소를 지었다.
“어머나, 아파라. 엄청나네. 지식의 용제라도 되시나? 분석력이 탁월해.”
티틀이 한참을 웃다가 갑자기 정색했다.
“부하들에게 생포를 맡겨봤자, 걔네가 먹어치워 버릴 테니 이런 수고를 한 거야. 그리고 높으신 분 말은 상관없어. 놓쳐버렸다고 하면 그만이거든.”
“…”
티틀이 다시 웃으며 자영을 조롱하듯 입을 떠벌렸다.
“선택권이 있을 것 같아? 계속 도망만 반복하고, 결국 의미 없이 내게 먹히는 거야.”
죽음이 다가온다.
그녀의 영역은 위태로운 감정을 묘사하듯 깜빡이고 있었다.
자영은 다시 힘없고 풀어진 눈을 했다. 누구에게 잡아먹히건 상관없었다. 어떻게 죽건 상관없었다. 다만 자발적으로 행한 이것이, 끊임없이 의심하던 자신의 정의였음을 눈치챘다. 약자를 돕는다는 과거의 신조. 자영의 쌍둥이 언니가 죽은 그날, 잃어버린 것. 그녀는 마음속으로 통탄했다. 자신을 약하다며 깎아내리고, 홀로 도망 다니기에 바빴던 날들이 하나둘 눈 앞을 스쳐 지나갔다. 그녀는 나지막이 메어가 한 말을 떠올렸다.
‘목적 없는 선택은 없잖아?’
마음 속 꺼져가는 신조는 응어리가 되어 그녀의 화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보잘것없는 응어리가 바로 자신 목적이었음을, 자영은 깨달았다.
그녀는 혼란스러웠다. 충동적으로 행한 일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자신이 살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해 벌인 일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렇지만…
티틀이 자영에게 천천히 다가가기 시작했다.
“최대한 깔끔하게 처리해줄게.”
티틀이 의지색을 발했다. 티틀의 주위로 거대한 식충들이 몇 마리 나타났다. 날카로운 턱을 가진 녀석들은 입을 벌리며 입맛을 다셨다. 자영은 무의식적으로 주춤하며 벽 쪽으로 물러났다. 벌레 한 마리가 자영을 향해, 날아가기 시작한 찰나.
“자영, 그대의 열정에 박수를 보내오!”
독특한 억양과 넙데데한 목소리가 자수정 벽을 타고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목소리의 근원지로 눈을 돌리자, 그곳에는 동그랗게 생긴 한 색채가 있었다.
짐승의 몸을 가진 색채로 보기엔 너무 부풀어있는 신체. 하찮게 붙어있는 두 다리, 마법처럼 부양하고 있는 손. 부스스하게 뜬 눈으로 본다면, 커다란 옅은 이로 착각할만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아주 쨍한 핫핑크색 몸체. 용에게 먹힌 모습을 형상화한 것 같은 머리와 날개, 꼬리까지. 거기에 위압감 있는 스태프는 확실히 그가 색채임을 입증하고 있었다.
티틀이 식충들을 멈춰 새우며 그에게 말했다.
“누구야?”
“소인은 에터. 자영의 오랜 친구요.”
에터의 말은 다시 벽 안을 울렸다. 다예람은 짜증을 내며 귀를 막았다. 다른 색채귀들도 상당히 불쾌해하는 것 같았다. 그는 보잘것없는 날개를 퍼덕이며 천천히 벽 아래로 하강해, 자영의 옆으로 내려왔다.
“…에터.”
“얘기는 나중에 하시오.”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티틀이 절륜한 속도로 날아와 에터를 걷어찼다.
바람을 가르는 소리만 들어도 살이 썰려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에터는 침착하게 스태프를 땅에 박아 몸이 날아가는 것을 막았다.
“용 색채구나? 희귀하다고 들었는데. 내 부하에게 들었어. 그 녀석도 마찬가지거든.”
“그게 무슨 상관이오.”
에터가 땅에서 스태프를 뽑았다. 그러고는 그것의 머리를 티틀에게 향하게 쥐었다.
“너, 재미있는 친구를 데리고 있었구나? 어디서 사귄 거야?”
티틀의 잡소리에 자영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주눅이 든 것처럼 힘없이 서 있었다. 에터는 그녀를 강렬한 눈빛으로 응시하며 말했다.
“자영! 열정적으로 돕게나!”
“…”
역시 대답하지 않았다. 자영은 계속해 무표정만 짓고 있었다. 다만 어딘가에서 당혹스러움과 불편한 감정이 새어나오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티틀은 이 모호한 상황을 깨부수며, 일사불란하게 식충들을 날리기 시작했다. 자영과 에터 모두를 노린 광범위한 군대였다. 에터는 스태프를 빠르게 돌리면서 그것들을 쳐내고 있었다. 몇몇이 자영을 향해 날아가자, 그녀는 의지색을 쓰며 그들을 터뜨렸다.
“드디어 할 마음이 생긴 것이오?”
에터의 말이 제대로 닿기도 전에, 식충을 뚫고 티틀의 할퀴기가 들어왔다. 에터는 그 굼떠 보이는 몸으로 빠르게 회피했다. 자영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 혼란스러워.”
“나중에 생각하시오! 지금은…!”
에터는 점점 궁지에 몰렸다. 자영을 지키면서 동시에, 자신을 공격하는 티틀의 의지색을 전부 막는 것은 곤란했다. 밀리기 시작한 에터는 가벼운 상처를 입기 시작했다.
“너도 같이 먹어주지. 네 실력도 상당해 보이는 걸, 맛있겠어.”
티틀이 의지색을 크게 발하기 시작했다. 탄색 영역이 백지를 야금야금 먹으며 모습을 보였다. 영역의 소리는 자수정 벽을 타고 일전 에터의 목소리처럼 울리기 시작했다. 그 위압감은 골로버, 아니 자영보다 한 층 위에 있었다. 에터는 스태프를 꽉 쥐며 불타오르는 눈을 했다.
“제대로 싸우겠다는 건가? 날 이길 수 있겠어?”
“모르오. 해봐야 알겠지요.”
그들은 팽팽한 긴장감 속에 대치하다, 티틀이 먼저 식충들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에터는 오른쪽 다리를 뒤로 내빼며 의지색을 쓸 준비를 시작했다.
에터의 진한 핑크색의 영역이 펼쳐졌다. 영역에선 열정적인 분위기의 목관 악기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양측 모두 밀리지 않는 막상막하 모습을 보였다. 자영은 물러서며 그 광경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그때 그녀의 뒤에서 기척이 느껴졌다.
자영이 돌아본 곳엔 한 색채가 서 있었다.
보랏빛의 긴 코트, 고귀한 모습의 나팔꽃 무늬로 장식된 옷과 귀걸이, 멋들어진 긴 바지와 광나는 구두. 목을 두르는 고급스러운 재질의 털. 자영과 머리 한 개 가까이 차이 나는 훤칠한 키. 오점이 있다면 얼굴에는 십자 모양의 큰 흉터 정도. 한 눈에 봐도 예사롭지 않은 존재임을 알 수 있었다.
그를 본 자영의 눈이 크게 떠졌다.
“바이젤루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