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빛의 갑옷. 쫙 벌어진 어깨. 부풀어 오른 근육들. 비교적 초라한 하체. 우둔하게 생긴 그의 이름은 제이 룽. 티틀의 암시장의 에이스 딜러이다.
티틀의 암시장은 세 명의 간부가 동등한 권한을 갖고 운영한다. 마스터 딜러, 요트 딜러, 에이스 딜러. 허나 이 동등함은 어디까지나 표면상으로 지켜질 뿐이다.
본래 그들은 모두 암시장에 소속된 색채귀들을 사고팔 권한이 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조직 대부분을 쥐락펴락할 수 있는 것은 마스터 딜러, 티틀이다. 맘에 드는 색채귀를 꼽아서 자신의 사병으로 사용하거나, 다른 딜러들의 거래에 참견하는 등. 실상 간부라는 표현은 마스터 딜러에게 어울리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는 티틀에게 불만이 많다. 그의 검은 속내를 어느 정도 간파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대 마스터 딜러는 티틀의 계략에 빠져 직책에서 내려오게 되었다. 그리고 그 빈자리를 뛰어난 실력과 총명함으로 차지했다. 요트 딜러는 티틀에게 충성하고 있기에 세 딜러 중 실질적인 영향력이 매우 약하다. 날이 갈수록 티틀의 권한은 늘어만 갔다. 그렇지만 제이 룽은 절대 굽힐 생각이 없다.
“어딜 가는 거냐. 개인행동은 용납할 수 없다.”
“왜, 제이. 이건 엄연히 정찰인데.”
“아니. 사리사욕을 충족하기 위해 그러는 건 다 안다. 정 정찰병을 파견할 거면, 타지에 있는 색채귀들도 많다.”
“웃기셔. 어떻게 연락하게?”
“네 의지색을 사용하면 되는 게 아닌가?”
“그러네! 알려줘서 고마워.”
티틀의 대답을 들으며 제이 룽은 천천히 뒤로 돌아 다른 방을 향해 걸어갔다. 방문을 열기 전, 제이 룽은 고개를 돌려 말했다.
“다음번에도 같은 행동을 한다면 그땐 무력으로 나가겠다.”
“그래라?”
문이 닫혔다. 티틀은 여전히 웃음기를 띄고 있었다. 티틀은 팔을 들어 의지색을 쓰기 시작했다. 곧이어, 손 주변으로 모래빛의 커다란 딱정벌레의 형상이 점점 나타났다.
“레빙, 나야. 정찰을 부탁할게. 목표는 자영, 그리고 걔랑 같이 다니는 색채야. 최대한 싸움은 피해. 녀석들의 정보를 알아낼 수 있으면 더 좋아.”
티틀이 말을 끝내자, 거대한 딱정벌레는 목표를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그래. 오랜만에 제이의 말도 한 번 들어볼까? 여유롭게 기다려보자고. 맛있는 건 원래 남겨 놓고 먹는 법이니까!”
“이 정도면 꽤 나쁘지 않네.”
“고마워!”
자영은 메어의 의지색 훈련을 도와주고 있었다. 어느새 둘이 사제지간이 된 게 3주는 흐른 것 같다. 메어는 그동안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다. 그녀에게 천재적인 재능은 없었지만, 그 대단한 노력은 자영의 만족을 살만했다.
“전보다 효율도 많이 높아진 것 같아! 그래도 아직 색의 영역을 다루는 건 힘드네…”
“그건 누구나 힘든 게 맞아.”
“이런 것도 만들었어!”
메어가 바유에게 수신호를 주자, 바유가 왼쪽으로 움직였다. 옅은 이들은 바유의 움직임을 따라서 각각의 위치로 움직였다.
“내 의지색을 더 효율적으로 쓰려고 생각해낸 거야!
“… 좋네.”
“보여주고 싶은 게 많은데… 그래, 이것도 있-”
순간, 자영이 뒤를 돌아봤다.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분명 기운이 느껴졌다. 속이 쓰라린 퀘퀘함. 필히 색채귀일 것이다. 녀석은 영역을 나갔다가, 들어오기를 반복하며 공유되고 있는 영역의 가장자리를 돌고 있었다.
“응? 뭔가 있어 자영?”
“… 색채귀의 기운이 느껴져.”
녀석은 바로 레빙. 티틀의 명령을 받들고 곧장 자영의 흔적을 추적해 온 것이다.
“메어. 혼자서 한 번 녀석에게 가 보겠어?”
“응? 같이 가는 게 아니고?”
“무슨 일이 있으면 내가 갈 테니 걱정 말고.”
“좋아! 내가 얼마나 성장한 지 두 눈으로 똑똑히 봐 줘!”
메어는 본능적으로 레빙이 느껴지는 방향으로 향했다. 확실히 그녀의 감지력은 일반적인 색채 이상이었다. 점점 더 녀석의 기운이 가까워지고 있었던 그때, 녀석이 거리를 조금씩 벌리는 게 느껴졌다.
메어는 두 가지 가정을 했다. 첫 번째, 목적이 있기에 일부러 거리를 벌리고 있다. 두 번째, 도망치고 있다. 허나 얼굴도 만나지 않은 색채의 영역에서 간을 보다 도망칠 일은 적다. 어떠한 의도가 있다고 파악한 메어는 걸음을 멈췄다.
특유의 불쾌감이 메어의 윗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메어도 녀석이 색채귀라는 것을 확실하게 느꼈다.
다시 녀석이 영역 안으로 들어온다. 그 순간 메어는 바유를 필두로 옅은 이들을 레빙이 있는 방향을 향해, 일렬로 세웠다.
‘아무래도 탐색전을 하러 온 것 같은데… 그럼 이쪽에서 한 방 먹이고 시작해야지!”
메어는 바유에게 가지색 번개를 감응시켰다. 다른 옅은 이들이 이어서 하나둘 감응되기 시작할 때, 메어가 엄지를 든 수신호를 보냈다. 옅은 이들이 서로의 거리를 순식간에 좁혔다.
강력한 일렉기타 소리가 퍼져 나가며, 거대한 바늘과 같은 형상의 번개가 레빙을 향해 날아갔다.
쿠궁-
번개가 꽂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래도 너무 먼 거리에서 쏜 탓일까, 빗나간 것 같았다. 레빙이 내뿜고 있는 특유의 느낌은 흐트러짐 없이 정갈했다.
레빙의 기운이 점점 커지는 것 같았다. 다가오고 있다. 아마 아까의 번개가 가까스로 빗나가며 위협을 느꼈고, 전투태세에 돌입한 것 같았다.
녀석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레빙의 실체를 본 메어는 웃지 않을 수 없었다. 기껏해야 자신의 얼굴 정도의 크기. 화나 보이려고 애쓴 눈썹과 귀여운 눈. 작은 입과 지느러미. 새끼 물고기를 연상케 했다.
“뭐야, 이렇게 작은 색채가 있다니?”
“휘이이이…”
허나 메어의 웃음은 수 초도 되지 않아 사라졌다. 레빙의 울음소리와 함께, 주변이 얼어붙기 시작했다. 이윽고, 영역의 충돌이 시작되었다.
바다색. 대양과 같은 푸른 빛.
차가운 분위기의 멜로디와 악기 소리들이 들려왔다.
녀석은 얼음으로 무언가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 크기는 점점 커졌다. 뱀. 물고기. 용을 합친 것과 같은 무서운 생김새의 얼음 생명체. 소위 레비아탄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괴수를 닮아 있었다. 레빙은 자신의 소환수 위에 올라타며 적개심을 드러냈다.
“좋아. 수행의 성과를 보여줄 수 있겠어. 진심으로 해보자고!”
“음…”
혼잣말이 이끄는 곳으로 시선을 돌리자, 골로버와 엘도라스가 군대를 이끌고 가고 있었다. 그것을 지켜보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수호자들의 소속원 치즈. 누런빛의 굽이치는 액체로 된 옷을 걸치고, 무서운 얼굴을 한 옅은 이, ‘모자렐라’를 쓰고 있었다.
“네 생각은 어때?”
치즈가 말하자, 모자렐라가 히히덕거리는 소리를 냈다.
“그렇지? 전쟁을 벌인다는 거네.”
치즈가 모자렐라의 말을 알아들은 듯 답했다.
“녀석이 위험하다는 확실한 물증이 나왔군. 그러면 손을 좀 써줘야겠는걸.”
치즈가 지면을 발로 차자 순식간에 그녀의 모습이 사라졌다.
메어는 조심스럽게 원을 그리며 레빙과의 거리를 유지했다. 녀석도 마찬가지였다. 허나 정보력은 레빙의 우위였다. 아까의 공격으로 번개에 대한 의지색을 쓴다는 것을 레빙은 알고 있었다.
시작을 끊은 것은 메어였다. 메어는 다시 엄지를 든 수신호를 보내자, 아까와 같이 옅은 이들이 일렬로 섰다.
하지만 빠르게 파악당했다. 레빙은 빠른 속도로 좌우를 오갔다. 메어는 타이밍을 재다가, 번개를 쏘았다. 역시 빗나갔다. 소환수가 입을 크게 벌리자, 녀석의 코앞으로 거대한 고드름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한 발, 두 발, 세 발. 녀석이 차례차례 거대한 고드름을 발사했다.
세 발의 고드름은 메어의 왼쪽, 중앙, 오른쪽을 향해 날아왔다. 유일한 사각은 위와 아래. 메어는 아래로 슬라이딩을 했다. 허나 그 앞엔 레빙이 기다리고 있었다. 사각을 노출시켜 퇴로를 최소한으로 줄인 전술이었다.
그러나 레빙은 큰 착각을 하고 있었다.
메어의 의지색은 번개를 ‘발사’하는 것이 아니다. 몸에서 번개를 만들어내 ‘감응’시키는 것이다. 아까 번개를 쏘아낸 것은 메어의 응용기 중 하나일 뿐이었다. 매어는 온몸에 번개를 둘러서 폭발적인 출력으로 레빙을 감전시켰다.
“키이이이!!!!”
레빙은 빠르게 의지색의 사정거리에서 벗어났다. 꽤나 아픈 공격이었지만, 충분한 등가교환이 있었다. 메어는 그것을 금방 눈치챘다. 메어의 앞에 붙어있던 바유가 얼어버려 땅에 떨어져 있었던 것이었다.
“바… 바유!!”
당황한 메어를 향해 레빙이 다시 고드름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번엔 검지를 든 수신호를 줬다. 레빙은 아까보다 두 발 더 많은 고드름을 쏘았다. 옅은 이들은 모두 산개해 고드름의 바깥으로 나왔다. 하지만 메어는 빠져나오지 못했다.
쿠웅-
얼음이 깨지는 소리와 폭음이 들렸다.
메어는 팔에 꽤 상처를 입었다. 그러나 가까스로 몸을 비틀었고, 고드름이 직격하는 것을 피할 수 있었다. 메어가 바유에게 의지색을 감응시키자, 바유가 얼음을 깨고 다시 나왔다.
“괜찮아?”
“숨 참느라 좀 힘들었다. 그런데 메어, 좋은 생각이 있다.”
“뭔데?”
바유가 메어에게 귓속말을 했다. 메어가 이를 듣고 끄덕였다. 메어가 옅은 이들을 불러모아 작전을 얘기했다.
곧이어, 메어가 의지색을 감응시킨 옅은 이들을 앞에 세우고 레빙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레빙의 입장에선 얼려버리면 되는 것일 뿐. 레빙은 대수롭지 않게 옅은 이들을 얼리기 시작했다. 메어의 노림수는 아마도 옅은 이들을 내주고, 기습하는 것. 레빙은 이를 빠르게 파악하고 옅은 이들을 얼린 뒤, 순간적으로 꼬리를 접었다 폈다. 순간적으로 길어진 사정거리. 메어는 속수무책으로 꼬리에 맞고 날아갔다.
“이렇게 하는 거 맞지, 바유?”
“정확하다.”
날아가는 메어를 향해 바유가 붙으며 말했다. 메어는 살짝 불안했지만, 곧 의지를 다잡았다. 메어는 사뿐히 착지한 뒤, 다시 레빙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녀석도 마찬가지로 메어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가자 바유!!”
메어가 바유에게 소리치며 달려갔다. 바유와 메어는 몸에서 의지색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레빙은 이번에도 고드름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작았다. 그렇게 순식간에 만들어진 고드름들을, 녀석은 사방으로 연사하기 시작했다.
“이건 계획에 없었는데…”
“일단 각자 피하자고!”
바유는 위로 날아가 쉽게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메어는 발이 땅에 붙어있었다. 날아온다. 메어는 움직임을 최소화했다. 오로지 자신의 앞으로 날아오는 고드름만을 피했다. 가까이 스쳐 지나간 고드름도 있었지만, 메어는 크게 다치지 않았다.
고드름들이 날아오는 것이 멈추자, 레빙은 전보다 더욱 앞으로 걸어와 있었다.
“지금이다.”
바유가 말하자, 메어가 크게 소리쳤다.
“얘들아!!!!”
번쩍-
상당한 크기의 번개가 레빙을 향해 내리쳤다. 레빙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옅은 이들은 분명히 전부 얼렸을 텐데. 둘이서 이 정도의 번개를 만들어냈다니? 레빙이 천천히 뒤를 돌아보자, 자신이 큰 실책을 저질렀음을 깨달았다.
얼어버린 옅은 이들은 레빙이 앞으로 온 사이, 남아있던 의지색으로 얼음을 뚫고 나와 있었다. 그들은 레빙의 뒤를, 메어의 의지색이 닿을 수 있을 때까지 따라왔다.
한 번은 우연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알 수 있었다. 처음부터 모두 전략이었다. 메어가 보이지 않는 레빙에게 번개를 쏘았던 그 시점부터. 말려들고 있었던 것이다.
레빙은 거세게 저항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마어마한 열은 레빙을 고통스럽게 했고, 결국 소환수를 없앴다. 그리고 자신을 감싸는 두꺼운 얼음을 만들어냈다. 이걸로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 번개가 멈추고, 메어와 옅은 이들은 레빙과 거리를 천천히 좁히기 시작했다. 레빙은 두꺼운 얼음을 구 형태로 두른 채 빠져나오지 않고 있었다.
그때, 녀석의 주위가 점점 얼어붙기 시작했다. 지면이 천천히 얼어붙으며 바다색의 얼음빛이 메어를 향해 다가왔다.
메어는 거리를 좁히는 걸 멈추고 천천히 물러나며 레빙의 주위를 돌았다. 이를 놓치지 않은 레빙은 메어가 밟고 있던 지면과 함께, 그녀의 하반신을 순식간에 얼려버렸다. 절체절명의 상황. 레빙이 얼음벽을 깨고 나와 메어를 향해 돌진했다. 메어는 당황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수고했어 메어.”
그 말과 함께 레빙은 거대한 수정을 정통으로 맞아 멀리 날아가 버렸다. 곧, 레빙의 기운도 멀어져 느껴지지 않게 되었다. 녀석의 의지색도 사라지며, 메어는 얼음 속에서 빠져나왔다.
“자영, 어땠어?”
메어가 당황한 표정을 숨기며 말했다.
“마지막은 좀 멋없었지만, 잘했어.”
자영은 담담히 칭찬했다. 그러나 겉과 다르게 속마음은 상당히 고조되어있었다. 이번 전투에서 메어가 좋은 의지색을 발한 것은 사실이다. 허나 판을 이끌어간, 타고났다고 할 수밖에 없는 감각은 자영 자신에게도 없는 것이었다. 직접 가르쳤기에 알 수 있었다. 자신이 개입하지 않았어도, 메어는 충분히 의지색을 이용해 다음 수를 마련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이게… 무슨 짓…아아악!!!!!!”
리머미가 신음했다. 리머미는 뒤로 넘어졌다. 기다란 팔로 자신의 몸을 밀어가며, 천천히 물러나기 시작했다.
리머미는 티틀의 명을 받아 암시장의 문을 지키고 있었다. 갑작스럽게 녀석이 나타난 것은 아주 조금 전의 일. 리머미의 앞엔 상대적으로 작은 체구의 한 색채가 서 있었다.
“초록색… 초록색… 초록색…”
칼날과 같이 뾰족한 머리카락. 생물처럼 움직이는 거대한 드레스. 드레스 위에 박혀있는 징그러운 눈들. 뾰족한 눈썹.
“초록색은 나밖에 없어. 나 밖에 없다고. 그런데 있네? 다른 초록색이 있어. 너도 초록색이지? 싸우자! 싸워서 누가 더 강한지 결판을 내자고. 아, 그전에 소개할게. 내 이름은 광기 서린 칼날이라고 해! 자기소개, 해주겠어?”
광기 서린 칼날. 수호자들 사이에선 광(狂)이라고 불리는 존재. 몇 없는 분노의 색채귀이다. 광이 리머미의 몸 위로 올라왔다.
“아니다… 난… 약하다…”
리머미가 고통스러워하며 몸을 뒤로 끌기 시작했다. 광은 믿지 못하겠다는 듯, 소름 끼치는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아니면 뭔데? 뭐야? 약하다는 거야? 그러면 초록색이 아니야? 아니야, 너는 초록색이야. 나도 초록색이지? 싸워야겠지? 세상에 초록색은 나밖에 없어야 해. 자, 보여줘. 네 의지, 영역, 색채귀로서의 향기!!”
광의 드레스 내부에서 칼날이 삐져나오기 시작했다.
“너, 전쟁이라도 하러 온 거야?”
광이 움직임을 멈췄다.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티틀이 서 있었다.
“여전히 귀여운 입모양 하고 있어- 티틀!!”
“이번엔 왜 오셨을까?”
티틀이 웃음을 지으며 광을 보았다.
“초록색이 있어서 왔어. 녀석의 흔적을 봤어. 녀석의 흔적도 초록색이었어. 그래서 왔어. 저 녀석만 베게 해줘. 강하지? 소문도 들었어. 의지를 꺾어버리는 초록빛 색채.”
“너에 대한 소문을 이 녀석의 소문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쟤는 그냥 평범한 색채귀인데.”
티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광이 정색했다.
“왜? 초록색이잖아. 나도 초록색이잖아. 이유는 충분하잖아.”
“뭐, 내줄 수는 있긴 한데…”
“티… 티틀…”
리머미가 절규하듯 티틀에게 말했다. 그러나 티틀은 실실 웃었다. 마스터 딜러인 그에게는 리머미에 대한 모든 것이 허용되었다. 맘대로 팔아넘기는 것도, 죽이는 것도, 살리는 것도. 광의 성격을 잘 아는 티틀은, 곧 답을 했다.
“그래. 이제 리머미는 네 거야, 광기 서린 칼날.”
“좋아! 대신 영역은 너 줄게. 잘 먹고 잘 크라고!”
“이게… 무슨…”
광은 드레스의 칼날을 움직여 리머미를 베었다. 리머미는 정확히 반으로 갈리며 부글부글거리는 신음을 냈다. 리머미의 몸은 재생되었지만, 광은 다시 베었다. 다시, 다시, 다시.
재생. 재생. 재생. 재생.
재생…
곧 리머미의 의지색에 한계가 왔다. 녀석은 깔끔하게 두 토막이 나며 쓰러졌다.
“색의 영역도 꺼내지 않고 이러다니.”
“배려했어. 널 위해서. 다른 애들이 눈치채면 큰일 나잖아? 나 간다?”
광은 유유히 사라졌다. 티틀의 입장에선 두 마리의 토끼를 잡은 셈이 되었다. 부상당한 리머미를 처분해 영역을 늘리고, 광과의 싸움도 피할 수 있었다. 만약 충돌했다면 티틀의 암시장은 막대한 피해를 봤을 것이다. 티틀은 죽어가는 리머미에게 다가갔다. 리머미는 무언가 말하려고 했지만, 티틀은 무시한 채 처분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