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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당한 오버진 8화


“눈요기? 마치 언제든 날 이길 수 있다 생각하는 것 같은데.”


“물론-”


골로버의 투구 안에서 엘도라스의 목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곧 자수정에 감싸져 있던 도끼가 녹아 액체가 되었다. 녹은 금은 골로버의 주위로 둘렸다. 자영은 그 사이 뒤로 가며 거리를 벌렸다.


“얼마든지.”


골로버는 무거운 다리 장식들에 힘을 실기 시작했다. 거대한 체구에 맞지 않는 속도. 실로 엄청난 소리가 허공을 울리며 자영을 향해 다가왔다.


골로버는 왼손에 거대한 질량의 장갑을 만들어서 둘렀다. 마치 기도하듯 양손을 붙이고, 두 다리로 높게 뛰었다. 가속도를 붙여 강력한 한 방을 먹일 생각이었다. 자영은 손에 얇은 자수정 막을 두르고 골로버의 서전트 점프에 맞춰 사뿐히 뛰었다. 이윽고, 골로버의 우락부락한 주먹과 자영의 나약한 손이 맞닿았다. 통념상 유리가 바위에 깨지듯 산산조각이 날 것이다.


“?!”


하지만 자영은 부서지지 않았다. 그녀는 곧바로 흐트러짐 없이, 앞으로 뻗은 오른손을 아래로 내렸다. 내려가는 오른손과 반대로 왼손은 천천히 올라갔다. 풍차 같은 모습으로 천천히 두 팔을 돌리자, 골로버는 자신의 힘을 주체하지 못하고 고꾸라지며 땅으로 처박혔다.


“의지색을 포기하고 갑옷을 두른 건 칭찬해줄게.”


가벼운 조롱이 섞인 자영의 말에 골로버는 털털한 웃음으로 맞받아치며 일어났다.


“확실히 재밌어, 그 유술이라는 거. 직접 배운 거냐? 바이젤루스한테 말이다.”

“난 스승 같은 거 없어.”


자영이 날카롭게 쏘아붙이듯 말했다. 골로버가 상반신에 뭍은 먼지들을 털어냈다. 구질구질했던 금의 갑옷들이 다시 빛나기 시작했다.


“녀석의 실력과 명성을 생각하면… 그렇지. 넌 그냥 따라 할 뿐인 건가.”


골로버가 온몸에 힘을 주며 달리기 시작했다. 엘도라스의 휘파람 소리가 들리자, 이번엔 양손으로 잡는 거대한 마상창이 만들어졌다. 매우 커다란 고깔을 닮은 마상창은 척 보기에도 받아치기 힘든 형상이었다. 가까스로 피하거나, 아주 작은 창의 맨 앞부분, 꼭짓점을 노려야 했다.


“이번에도 보여봐라!!!”


곧 골로버는 자영의 복부를 노리고 창을 찔러 박았다. 그러나 자영은 피하지 않고 마상창을 온몸으로 받아냈다. 자영은 두 팔을 뻗어 마상창의 꼭짓점을 정확하게 잡아냈다. 이어 그 점을 향해 자신의 의지색을 발하기 시작했다. 침묵의 자수정이 마상창 내부를 파고들려 자라났다. 순식간에 골로버가 들고 있던 창은 대파되며 여러 굵은 잔해가 되어 바닥으로 떨어졌다. 레코드판 소리가 갈라지며, 통기타가 튕기는 소리가 퍼졌다. 금과 자수정이 아름답게 교차하며 정오색을 받은 모습은 오묘한 기분을 들게 하기 충분했다.


“큭!”


자영은 곧바로 마상창의 잔해를 밟고 올라가 골로버의 머리 쪽을 향해 다가갔다. 노리는 것은 바로 엘도라스. 엘도라스는 이를 눈치채자마자 투구의 표면을 수많은 가시가 산개한 모습으로 녹여 굳혔다.


“의지색을 포기했다고?”


골로버는 자영이 멈칫한 틈을 놓치지 않고 오른손으로 강하게 정권을 날렸다. 그러나 자영은 매우 쉽게 정권을 피하며 다시 지면으로 가뿐하게 착지했다.


골로버의 정권은 자신에게로 돌아왔다. 의지색이 담긴 정권은 상반신의 목에 가까운 위치에 박혔다. 흉갑의 윗부분이 녹아내렸다. 갑옷이 없었다면 본인의 의지색으로 치명상을 당할 수 있었다.


“이… 이…”

“굴욕이라도 되나? 구겨진 갑옷이 볼만하네.”


그들은 언제나 색채들을 사고파는 포식자, 주인의 위치에 서 있었다. 그들은 생애 처음으로, 압도감이라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전력이 아니라 하더라도 너무나도 일방적이었다.


골로버는 화를 참지 못하고 동요하기 시작했다. 보이지 않는 투구 내부에서 엘도라스가 골로버를 달래고 있을 정도였다. 골로버의 화가 극에 달하자 그의 전신이 빛나기 시작한다. 그의 실루엣이 무시무시하게 변해가기 시작했다.


“잠깐- 너…!!!”

“순순히 내 힘이 되어라 엘도라스!!!”


엘도라스의 비명이 찢어지듯 들리며 빛이 점점 강하게 분산됐다.


섬광이 사라지자 보이는 것은 더욱 흉악해진 모습의 골로버였다. 갑옷의 직선적인 모습은 유선적이었던 전과 달랐다. 마치 분노하는 듯한 형태의 갑주의 장식들은 붉게 달아올라 골로버의 감정을 간접적으로 품고 있었다. 엘도라스의 비명은 더는 들리지 않았다.


완전히 힘을 개방한 골로버는 근처에 있던 금들을 모두 모아 녹이기 시작했다. 기이한 소리가 반복된 끝에 드러난 것은, 육중한 대검. 여태까지 만들었던 황금 무기들이 가소로워 보일 정도로, 화려하고 공포스러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우오오오!!!!!”


골로버가 맹렬히 울부짖으며 자영을 향해 달려갔다. 자영은 손가락을 펼치며 그 끝에 자수정 손톱을 새웠다. 이내 두 색채는 팽팽한 난타전을 시작했다. 묵직하고 우람한 베어가르기가 들어가면, 아름답고 빠른 유술이 여러 차례 맞부딪혔다. 격차가 없는 호각의 싸움 같았지만, 아니었다. 골로버가 미묘하게 밀리고 있었다.


대검이 공기를 가르는 속도가 점점 느려진다. 검격은 미묘하게 중심이 엇나가 있었다. 자영은 그 허점을 파악하고 손톱을 이용해 검의 궤도를 비틀었다. 순간순간 골로버는 박치기와 발차기를 이용해 의지색을 사용하려 했지만, 궤도가 틀어진 자신의 무기에 맞아 의미 없이 영역만 낭비했다.


결국, 맞치기는 무리라고 판단한 골로버는 뒤로 물러나 거리를 벌렸다.


“받아봐라.”

“힘겨루기를 하자는 거야?”


골로버는 양손으로 대검을 들어 올렸다. 칼날은 대기를 가르며 끼긱 소리를 냈다. 레코드판이 터질 것 같은 불쾌한 소리가 퍼지며, 검의 몸체가 금빛으로 감싸졌다. 자영도 심상치 않은 공격이라고 생각한 것인지, 처음으로 힘이 실린 자세를 취했다. 이윽고, 칼날이 위에서 아래로 일자를 그리며 떨어졌다.


파앗!


황금색의 참격이 굉음을 내며 자영을 향해 다가왔다. 동시에, 각자의 색의 영역은 최고조로 충돌하기 시작했다. 참격은 적어도 자영의 키를 다섯 배를 웃도는 엄청난 크기였다. 참격에 닿은 땅은 가는 입자의 먼지로 갈려버리며 짙은 안개가 되었다. 골로버가 낼 수 있는 최속, 최대의 기술이었다. 


곧, 자영은 의지색을 발했다. 왼손은 주먹 쥐고 오른팔 아래에 살포시 놓았다. 오른손을 펼치자, 어마어마한 크기의 통기타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두 영역의 소리를 넘어, 하나의 곡이 될 정도의 선율이 교차하기 시작했다.


참격이 자영에게 도달하기 직전, 땅 밑에서 거대한 규모의 수정 고드름이 일사불란하게 펼쳐지기 시작했다. 그 역고드름들은 반원으로 펼쳐져 참격을 둘러싸며 점점 자라나기 시작했다. 갈라버리려는 의지색, 막으려는 의지색의 충돌. 영역의 선율은 점점 고조되며 피치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귀를 부숴버릴 정도로 높아진 소리가 되었을 무렵. 승패는 결정이 났다.





참격은 완전히 가로막히며 힘을 잃었다. 웅대한 자수정 침들은 지상을 지지대로 해 마치 하프를 만들어놓은 듯한 아름다운 모양새로 빛나고 있었다. 골로버는 힘을 더 쥐어짜 낼 수 없었다. 그는 무리하게 의지색을 사용해 영역의 빛깔이 옅어질 정도였다.


최후의 발악으로 골로버는 대검을 집어던졌다. 그러나 검은 자영의 근처에도 가지 못하고 고꾸라졌다. 골로버는 이내 겁에 질려 뒷걸음질쳤다.


“도망가는 거라면 봐주도록 할게. 어차피 넌 얼마 있지 않아서 죽게 될 거니까.”

“이… 이건 전력 보충을 위해…”


자영은 메어가 있는 쪽으로 걸어가, 그녀를 보호하고 있던 자수정 벽을 해제했다. 자영이 잠자는 메어를 들쳐 업고 말했다.


“백지의 정령들에게 분해가 될까. 아니면, 사냥꾼들에게 잡힐까.”


자영이 뜸을 들이다가, 골로버가 있는 쪽을 돌아보며 날카롭게 말했다.


“뭐든 너의 명성에 걸맞은 초라한 최후야.”


메어를 업은 자영은 천천히 골로버가 있는 곳을 등지고 걸음을 옮겼다. 


“아, 그리고…”


그러다 잠시 자영은 무언가 생각난 듯, 골로버를 다시 바라봤다.


“방금 그 짓은 정말 역겨웠어.”


바유와 옅은 이들은 조용히 그 뒤를 따라갔다. 통기타 소리는 작아지고, 아주 약한 레코드판 소리만이 외롭게 남아 골로버의 곁을 지켰다.







“잘해줄 수 있지?”


티틀이 회의실 밖에서 다예람과 제이 룽을 배웅했다. 제이는 아주 못마땅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적어도 티틀의 아부만큼은 들리지 않을 것이다. 다예람은 조금의 찡그림도 없이 수수하게 웃고 있었다. 티틀의 명령이라면 무엇이든 행할 준비가 되어있는 말똥말똥한 상태였다. 딜러들의 뒤로는, 그들을 호위하는 시기의 색채귀들이 포진해있었다. 수 개의 다리를 가진 원뿔을 닮은 모습이었다. 많은 수는 아니었지만, 확실히 그곳에서는 속이 메스꺼워지는 기운이 풍겼다.


“나머지 친구들은 각지에 흩어져 있으니까, 모이려면 시간이 좀 걸릴 거야. 방향은 알지?”

“그럼요. 티틀 님.”

“…”


다예람과 제이 룽, 그리고 호위들이 출발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백지에 도달했다. 색채의 영역에 삼켜지지 않은 본래의 땅. 밤의 색이 짙어질수록, 힘없는 색채와 옅은 이들은 정령에 의해 백지의 하얀 잿더미로 돌아간다. 반대로 아침의 색이 짙어질수록 새로운 옅은 이들과 색채가 태어난다. 순환이 반복되다 보면 색채들의 흔적은 점점 옅어지기 마련이다. 


허나 뛰어난 감각을 지닌 색채귀들에겐 식은 죽 먹기다. 그들은 여러 색채와 싸우고, 영역을 흡수하며 성장했을 질투의 색채귀. 자영과 메어는 놓치려야 놓칠 수 없는 먹잇감이었다. 그리고 당연히 놓쳐서도 안 된다.


“제이 씨. 그렇게나 티틀 님이 싫으신가요?”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듣는 건가. 당장에라도 꽂아버리고 싶다, 주먹 말이야. 그 실실 웃는 낯짝을 보고 싶지 않아.”

“불쌍하네요. 그럴 실력도 없으시면서. 입만 살았군요.”


다예람의 여유로운 목소리와 제이 룽의 불만 가득한 목소리가 대립했다.

제이 룽이 걸음을 멈추고 주먹을 꽉 쥐었다. 주먹 주위에서 작은 종소리가 울려 퍼지며, 옥빛의 광선이 원형으로 산란했다.


“전에 마무리 짓지 못했잖아. 이번에 제대로 결판내볼 테냐?”


다예람이 정색하며 걸음을 늦게 멈추며 천천히 뒤를 돌아봤다. 다예람의 몸 곳곳에 있는 무늬가 눈처럼 떠지기 시작했다. 날카로운 눈동자들이 제이 룽을 맹렬히 응시했다.


“그럴까? 마침 티틀 님도 계시지 않으니.”


팽팽한 긴장감이 감도는 가운데, 뒤에서 지켜보던 시기의 색채귀들이 그들에게 다가와 싸움을 말렸다. 그러나 서로 물러설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중재하던 색채귀들은 마치 찰흙이 뭉치듯 하나로 합쳐지기 시작했다. 융합한 그들은 불쾌하고 탁한 색으로 애매모호하게 빛나다가, 점점 형태를 갖춰나갔다. 검은색에 가까운 푸른빛, 뉴트럴 틴트. 완전히 동화된 그들은 마치 뒤집어 놓은 오징어 같은 모양을 하고 있었다. 그는 머리의 촉수로 다예람과 제이 룽을 막아섰다.



“이상은 싸우지 말 것. 어서 갈라져서 움직일 것. 퀴스피드가 보고 있음.”


퀴스피드의 동공이 축소되며 두 딜러에게 위협을 가했다. 제이 룽은 잠깐 죽일 듯 노려보다 의지색을 해제했다. 다예람 역시 무늬의 눈을 감으며 다시 아리따운 눈웃음을 지었다.


“퀴스피드. 언제 이렇게 컸을까…”


다예람이 퀴스피드의 촉수를 잡아 끌어당기자, 그는 무덤덤하게 구속을 풀며 말했다.


“예람, 제이, 티틀의 명령을 받들어야 함. 엄연히 회의를 거쳐 내린 결정. 이 이상으로 혼란을 야기하지 말 것.”

“알았어, 알았어. 너도 인정받아서 딜러가 되고 싶은 거지. 걱정하지 마. 난 언제나 티틀 님에게 충성하니까. 감시하려면 저 녀석이나 해.”

“그럴 수 없음. 난 예람의 병력이자 호위임.”


다예람이 제이 룽을 슬며시 쳐다봤다. 제이 룽은 일치감치 썩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다예람은 지지 않고 계속 눈웃음을 지었다.


“그보다 제이 씨도 느껴지죠? 티틀 님이 말하신대로 자영의 기운이 남아 있어요. 그리고 이건… 그 같이 다니던 색채의 흔적 일려나요?”

“너가 나보다 잘 느낄 텐데. 난 감지 같은 거 잘 못한다고.”

“네- 네- 제가 알아서 하죠. 전 가볼 테니, 마무리는 잘 부탁해요?”







“그윽… 으으윽…!!!”


골로버가 신음했다. 이전과 같은 우람한 풍채는 없어졌다. 초라하고 바랜 빛깔의 앙상함만이 남아 있었다. 엘도라스도 없었다. 풍전등화였다. 어린 색채들의 매매인에서, 이젠 먹잇감이 되어 백지를 누비고 있었다. 영역의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영역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불순물이 섞인 저급 금괴마냥 추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하지만…”


골로버는 희망을 놓지 않았다. 아직 흩어져 있는 옅은 이들이 있고, 그들을 영역으로 변환하면 된다. 설령 그러지 못하더라도 다른 색채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충분한 휴식을 취하면 회복할 수 있었다. 치명상이 없었던 것은 불행 중 다행. 다시 일어설 수 있다. 전과 같이 수많은 부하들을 거느리며…




“너… 넌…”

“완벽해. 완벽하게 끝났어.”

“페라우스!! 어딜 갔다가 지금…!”


페라우스가 골로버를 향해 천천히 다가왔다.


“이 자식이… 우린 동업인이 아니었나!!! 필히 자영과 메어를 때어 놓겠다고 했는데…”

“메어가 누구지? 아, 자영에게 있다고 한 그 파트너인가 보군. 그래. 네 말대로 난 자영을 만났다.”

“그렇다는 건?”

“내 힘으로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지. 뭐, 어쩌겠나.”

“이런 무책임한…!”


페라우스의 턱이 크게 벌려지기 시작했다. 턱의 주변으로, 오페라의 화염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골로버는 자신의 처지를 눈치채지 못하고 계속해 불만을 표했다.


“페라우스… 넌 나를 배신했다!!! 네가 내 말을 들었다면 자영도, 그 가지 자식도 모두 잡을 수 있었는데…!!! 왜 넓게 보지 못하는 거냐!!!”

“자기소개를 하는 건가 골로버? 봐라. 이 얼마나 완벽한 상황이냐. 자영과 일행은 떠났다. 날 막을 수 있는 녀석은 없고, 너는 무방비해.”


페라우스의 말을 듣는 골로버의 표정은 점점 굳어져 갔다.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고, 손과 발은 벌벌 떨렸다. 동공이 확장되고, 가슴은 두근댔다. 숨은 점점 가빠져 갔다.


“나… 나를… 나를!!!”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너도 나를 이용했으면 재밌었을 텐데 말이야. 아, 설마 거기까진 생각이 미치지 못했나? 안타깝군. 나름 뒷세계의 큰 손이지 않은가. 일개 색채귀에게 먹히는 처지라니.”


“페라우스!!!”

불타오르는 화염의 주문이 들린다. 북의 양면이 진동하고, 저음의 악마 같은 목소리가 퍼졌다. 골로버의 비명은 불꽃이 일렁이는 소리와 하나가 되어 점점 멀어져만 갔다.


“이제… 머지않았군. 내 목표를 위해 남은 건 단 한걸음. 곧 나는 색채귀의 정점에 설 것이다…”







“이제 일어났네.”


자영의 얘기가 부스스 들려왔다. 메어가 천천히 눈을 뜨자, 바유와 옅은 이들의 모습이 보였다. 걱정하고 있던 그들의 얼굴이 펴지며 안심의 웃음이 맴돌았다. 자영은 언제나 그랬듯 무표정으로 앉아 힐끗 응시하고 있었다.


“그때 골로버를 막아서고… 어떻게 된 거지?”

“이겼어. 아니 정확힌 물러나게 했지.”

“역시 대단해…”


메어가 잠에서 덜 깬 목소리로 말했다. 이어 기지개를 크게 키고, 얼굴을 돌리며 몸을 풀었다. 그 사이 바유가 다가왔다.


“잘해줬다. 자영만큼은 아니지만, 많이 듬직했어.”

“히히 노력했지. 이전의 갓난아기가 아니라고.”

메어가 웃으며 얘기를 이어나갔다.


“골로버는 내 상상 이상으로 강했어. 아직 멀었다는 걸 느껴.”

“잘 아네. 그래서 내린 해답은?”

“수련 시간을 두 배로 늘리면 두 배로 강해질 거야!”

“봐라. 아직 어리숙하다고.”

“마… 말이 그렇다는 거야!!!”


바유와 메어의 대화를 듣던 자영은 처음으로 작은 미소를 지었다. 아주 냉소적이었던 그녀였기에, 도통 입꼬리가 올라간 것 같지 않았다. 그렇기에 그곳에 있던 누구도 눈치채지 못했다. 그 미소는 자영에게 있어서 너무 이질적이고 어색한 감각이었다.


“…다음번엔 내가 자영을 도울 거라고! 두고 봐!”


골로버라는 시련을 이겨낸 메어와 자영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다시 여정길에 올랐다.







약간의 시간이 흘러 다음 날, 밤의 색이 짙어질 무렵이었다.


“…”

“자영, 무슨 일 있어?”


자영이 손가락으로 동쪽을 가리켰다. 손이 향한 곳 끝에는 매우 뾰족한 산이 보였다. 산이라기에도 애매모호한 것이, 너무 가팔라 흡사 첨탑을 닮았다.


“아까부터 보이던 저거.”

“그렇지. 신경 쓰이긴 했어.”

“저건 일점산이야. 이 세상의 중심에 있다는.”

“세상의 중심?”


“그것도 그거지만… 우리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지?”

“음… 내 영역에서 중간중간 색채귀들이랑 싸우고, 마을도 들렸지?”


“세상의 중심은 무작정 걷는다고 올 수 있는 곳이 아니야. 우리가 걸을 방향을 완전히 알 순 없으니 어느 정도 오차가 있었지만, 티틀 녀석. 우릴 이쪽으로 유인한 거야.”

“뭐? 그렇다는 건…”




“반갑네요! 자영 씨.”


일점산을 등지고 다예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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