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며칠 전, 티틀의 암시장.
“후발대로 유인한다고?”
티틀과 다예람은 성당의 원탁에서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의자, 장롱, 전등까지 일전 수호자들과의 전투로 반파 되어 아수라장이었지만,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네. 경비대의 건물로 말이죠. 막대한 피해를 피치 못할 겁니다.”
“뭐, 넘어가 줄 녀석들이 있긴 해. 그런데 이쪽도 손실 없이 유인할 수는 없어. 반드시 사상자가 나올 거라고. 예람, 어떻게 생각해?”
티틀의 말에 다예람은 생각에 빠졌다. 그는 무덤덤한 표정을 지으며 그녀를 응시하고 있었다. 묘한 압박이 흐른 지 수 초, 그녀는 눈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뭐 상관없잖아요? 죽으면 다시 구해오면 되는 거죠.”
“맞아.”
티틀은 만족한 듯 입꼬리를 올렸다.
“해볼 만한 계획이야. 손실이 좀 있겠지만.”
“그럼 바로…”
“임무, 마치고 왔다. 그런데 이건 다 뭐냐?”
제이 룽의 목소리가 성당 밖에서 울렸다. 티틀과 다예람은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돌아왔군. 손님이 말썽을 부렸거든. 그나저나 잘 처리했어?”
“죽였다. 운이 좋다면 살았을 수도.”
“먹진 않은 거야? 후한을 남기지 않는 게 좋지 않겠어?”
“맛없는 녀석이었다.”
티틀이 깐족거리며 성질을 긁었지만, 그는 옥으로 만든 성채처럼 흔들림 없이 어떠한 말도 얹지 않았다. 다예람은 그런 제이 룽을 보며 킬킬거렸다.
“뭐가 그렇게 웃긴가.”
“아뇨. 아무것도 아녜요.”
“제이 룽, 너도 보고를 받아야겠지. 수호자들이랑 만나서 전쟁이 시작되려던 찰나에, 바이젤루스 녀석이 나타나서 중재했지 뭐야. 서로 이득 볼 게 없으니, 전쟁은 그렇게 마무리되었어.”
“…뭐? 장난하는가? 네 판단에 피해를 본 내 부하들은 뭐가 되지?”
“채워주면 되잖아. 거 참 깐깐하게 굴지 마.”
“티틀, 너…!!!”
“그만하시죠?”
제이 룽이 옥빛의 영역을 꺼내며 분노하자, 다예람이 다자색 영역을 꺼내 맞부딪혔다. 그녀는 온몸의 눈을 뜨며 그를 째려봤다. 제이 룽이 목을 긁는 소리를 내며 얼굴을 찡그리다가, 영역을 집어넣으며 몸을 돌렸다.
“내가 바보군…”
“그래도 네가 옳았어. 내가 허영심에 눈이 멀어 전력을 과대평가한 것 같네. 다음 회의 시간은 포폭스에게 물어봐. 나랑 예람은 거래가 잡혀서 말이야. 당분간 못 돌아오니 그때까지 본거지를 지켜주고 있어. 알았지?”
제이 룽이 성당을 빠져나가려 하자, 티틀이 넌지시 얘기했다. 그는 잠시 걸음을 멈췄다가 혀를 끌끌 차며 모습을 감췄다.
얼토당토치도 않은 사과를 뒤로, 제이 룽은 성당을 나와 나선형으로 꼬인 계단을 밟고 지상으로 올라갔다. 그는 저 멀리 나무 밑에 조각된 포폭스에게 다가가 인사를 했다.
“포폭스, 수고가 많군.”
“다녀오셨네요. 제이 룽님- 근데… 안색이 영 안 좋아 보이시네요-”
“티틀… 이해 안 되는 일만 벌이고, 부하들을 개죽음으로 몰아넣다니.”
“속을 알 수 없는 분이에요- 출정 때는 저만 남겨두셨고…”
“뭐?”
“어… 네… 말 그대로요-”
“녀석은 대체 무슨 정신머리지?!”
“괜한 말을 해버렸네요… 죄송합니다-”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는 건가…”
“진실을, 알려주겠음.”
“…퀴스피드?“
포폭스와 제이 룽이 그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곳, 땅 밑을 바라봤다. 이윽고 검푸른 빛의 웅덩이가 생기며 퀴스피드가 모습을 보이며, 그들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별동대가 잘 출발했을지 모르겠네. 동쪽 중심까지 얼마나 걸린대?”
“이주일 정도라고 합니다. 블루벌리였나요? 지금쯤이면 그는 목표물과 만났을 수도 있겠군요.”
“네 휘하에는 참 유능한 색채귀들이 많단 말이지.“
“별말씀을요. 그들이 잘 성장해준 덕분이죠.”
“어때? 내 퀴스피드랑 너의 네 개의 이빨이랑 비교한다면?”
“그렇네요… 재미있는 주제예요.“
“둘 다 원색이랑은 거리가 멀지. 잠재력도 그저 그렇겠지만…“
“서로 일장일단이 있네요. 하지만 협동력에서 나오는 그 힘은, 퀴스피드보다 뛰어나다고 보증할 수 있어요.”
“소중하구나?”
“가장 아끼죠.”
“너다워.”
다예람은 꽤 우쭐해하며 눈웃음을 지었다. 어린아이들이 사자와 호랑이를 두고 누가 동물의 왕인지, 티격태격하는 순수한 모습을 연상케 했다. 서로 자랑하고 칭찬하는, 그 기괴한 행태가 그들의 냄새를 더욱 역겹게 끓도록 만들었다.
“그래서 정하셨나요? 누굴 끌어들일지.”
“서쪽이라면 역시 녹룡이지. 무식하고, 무식한 만큼 강하지.”
“놈의 식성이 문제겠지만… 잘 따라올 겁니다. 생미끼만 많다면요.“
그녀는 꼬리를 의자삼아 앉아 골똘히 생각하며 그의 말을 듣고 있었다. 티틀은 그녀를 중심 삼아 빙글빙글 돌며 말했다.
“북쪽에는 가장 강한 녀석을 선물해야겠지. 두 얼굴의 후회라든지.“
“그 특이한 성격이랑 습성을 고려하면… 글쎄요. 따라만 온다면 아주 좋은 전력이겠지만요.“
“화를 돋워도 소심해지고, 달래줘도 화내는 친구긴 하지.”
“그렇다면 동쪽은?”
“불타는 기사는 어떨까?“
“폭거에 몸과 마음을 바치는 녀석이죠. 괜찮네요.”
“얼마나 재밌게 태워버릴지 기대가 되는걸. 자, 출발하자고? 녀석들의 본거지로.”
“부… 불이야!!! 아니, 이럴 때가 아니잖아… 저러면 안에 계신 대원분들은 전부!!!”
“침착해라. 일단 물이나 흙이라도 어디서…”
목탑들은 십자 형태로 교차한 얇은 벽과 짚을 엮어 대충 만들어진 지붕으로 나뉘어 있었다. 갖가지 재해에 너무나도 허술한 모양새였다.
“이 하얀 땅, 녹으면 축축해지잖아. 이거라도!!!”
“좋아, 나르자고.“
메어와 옅은 이들은 발을 동동굴리다, 철퍽거리는 주변을 보고 묘안을 냈다. 그들은 주변에 깔린 녹은 눈들과 진 땅을 길어 동그란 모양으로 뭉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만들어진 수박만 한 진흙 덩어리들을 바유와 옅은 이들이 가져가, 목탑의 위에서 마구 떨어뜨렸다. 화염의 숨이 막히자 불길은 눈에 띄게 잡히기 시작했다.
“이 정도면 된 것 같아. 그런데 여기… 누구 없나?”
메어가 큰 소리로 외치며 주변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누구도 답해오지 않았고, 도망간 흔적이나 몸부림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누군가가 살다가 버리고 간, 폐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메어는 옅은 이들을 이리저리 퍼뜨려 무언가 있는지 찾아봤다. 불타오르고 있는 통나무, 상자, 나무 밑동부터 목탑에서 떨어져 나온 잿더미, 판, 기둥 같은 것들이 보였다. 돌, 말린 채소, 쓸어서 모은 낙엽 같은 것도 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목탑의 불은 꺼져가며 메케한 연기를 남겨 놓았다. 앙상하게 남은 약간의 철근과 돌들은 탑의 형상을 대충이나마 유지하고 있었다.
“메어! 이쪽에 뭔가 있어!”
그때 한 옅은 이가 메어를 불렀다. 그녀와 일행이 도착하자, 그곳에는 짙은 붉은색으로 빛나는 사각형의 무언가가 땅 속에 박혀있었다. 자세히 보니 왼쪽에는 굵은 경첩 같은 것이 달려있었고, 오른쪽에는 돌려서 여는 손잡이 비스름한 것이 자리 잡고 있었다. 흡사 위로 향하고 있는 강철 문 같았다.
가열된 문이 뿜어내는 온도는 무시무시했다. 근처에 다가가기만 해도 엄청난 열기가 올라왔다. 보이지 않는 공기의 흐름이 피부 위로 그려지듯 에워싸지는 것이 느껴졌다.
“안에 누군가가 있지 않을까?”
“이런 일을 대비하라고 만든 대피소일지도 모르겠군. 근데 이거, 식으려면 꽤 시간이 걸리겠는걸.”
“이렇게 해보자고!“
메어가 몸에서 의지색을 방출하기 시작했다. 가짓빛의 번개가 소리 내며 그녀의 몸을 달궜다. 어느새 그들의 몸은 그 붉은 네모만큼 뜨겁게 달아올랐다. 메어는 빠르게 두 손으로 손잡이를 잡고 돌려, 문을 열었다.
“이해력이 는 것 같군.”
“간단하지!”
메어와 바유 일행이 문을 열자, 다시 한적하고 차가운 공기가 밑에서 흘러나왔다. 바닥은 가까웠다. 한눈에 봐도 옅은 깊이였고, 그 아래로 향하는 돌계단이 위태롭고 좁게 지어져 있었다. 그들은 일렬로 줄 서 조심스럽게 내려가기 시작했다. 밀착한 손끝에서 느껴지는 것은 자잘자잘한 틈과 껄끔거림, 거친 표면의 소리. 그리고 머리 위에서 떨어지고 있는 빛에 반사된, 진한 회색의 표면. 마감 없는 인공동굴 임을 알 수 있었다.
어느덧 그들은 돌계단의 마지막 칸에서 내려와 지하에 발을 올렸다. 좁은 외길을 따라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하자, 수직으로 내려오던 빛이 점점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동시에 앞에서 까막색이 다가오며 본능적인 공포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아예 안 보이는군.”
“그 숲보다 심하네… 아, 이러면 되겠어.”
메어가 바유를 앞장세운 뒤 의지색을 약하게 쏘았다. 가지색 조명이 켜진 것처럼, 길과 복도를 비추었다. 복도는 더러웠다. 케케묵은 먼지와 각종 도구, 선반, 상자들. 오래된 널빤지, 내용을 알 수 없는 서류 같은 잡동사니들이 즐비해 있었다.
“창고 같은 건가? 길은 계속 이어져 있는데…”
“가보자고.”
앞장 선 바유를 따라 메어 일행은 계속해서 걸음을 옮겼다. 더 걸어가자, 멀리서 희미한 불빛이 새어나오는 것이 보였다. 동그란 빛이었다. 자세히 보니 사각형의 띠로 된 섬광이 문의 형상으로 그어져 있었다.
“저기다!“
메어가 문을 향해 달려갔다. 목재로 된 문이었다. 낡은 경첩은 헐렁하게 문을 잡아주고 있었고, 중앙의 깨진 유리가 원형으로 빛을 퍼뜨리고 있었다. 그녀는 반가운 마음으로 문을 벌컥 열며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경비… 대… 어라?”
“메어, 왜 멈춰선…”
그들은 당황했다. 방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삭막하고 더러운 밖과는 대비되게 그곳은 깨끗하고 아름다웠다. 세 명도 넉넉히 잘 수 있을 것 같은 거대한 침대. 번질거리는 작은 탁자와 흔들의자. 새의 모습을 한 부드러운 조명. 강렬한 분위기가 도는 붉은 물감의 그림들까지, 외유내강이었다.
메어는 천천히 방을 둘러봤다. 회색빛의 빤질빤질한 바닥을 걷자 신발이 삐걱거리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하얀 카펫 옆에 있는 흔들의자를 건드려보기도 하고, 작은 탁자의 위를 쓸어보기도 했다. 메어는 침대에 털썩 주저앉으며 중얼댔다.
“그러면 대원분들은? 모두… 모두 다…“
“야!!! 자는 걸 방해하면 어떡해?!”
“어?”
누군가의 외침이 들려오자, 메어는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침대였다. 이불과 베개를 타고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가 깜짝 놀라며 일어서자, 침대가 기괴하게 뒤틀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붉고 검정빛으로 물들어갔고, 삐죽거리는 이파리처럼 갈라지고 날카로운 이빨이 자라났다. 세로 동공의 눈을 가진 꽃이 이리저리 피어나며 메어와 옅은 이들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변형된 침대의 규모는 점점 커지며 어느새 방 전체를 가득 메웠다.
“자… 잘못했어요!!! 살려주세요!!!“
메어는 화들짝 놀라며 문을 향해 달려갔고, 바유와 옅은 이들도 그녀를 따라갔다. 그 침대 괴물은 날카로운 촉수를 이용해 문을 봉쇄해버렸다. 녀석이 점점 메어 일행에게 다가왔다.
“죄송해요!!!”
“왜 그렇게 호들갑이셔.”
침대 괴물이 어이없어하며 말했다. 그 말과 동시에 침대로 된 촉수들은 점점 작아지며 회오리치기 시작했다.
“역시, 이 모습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니까.”
나선형으로 돌아가던 촉수가 점점 인간의 형태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굵게 저음으로 울리던 목소리는 점점 높고 선명하게 변해갔다. 징그러운 질감과 이빨은 변함없었지만, 변화의 끝에 나타난 모습은 꽤 그럴듯해 보였다. 뾰족뾰족한 머리카락과 길고 풍성하게 묶여 있는 트윈테일. 날카롭게 뜨인 눈. 뾰족한 이파리 같은 것들이 한데 모여 고풍스러운 아가씨를 묘사하고 있는 것 같았다.
“실례잖아. 처음부터 그런 반응을 보이면.”
중성적이면서 높은 느낌의, 꽤 미려한 목소리였다. 메어는 마음을 가다듬고 얘기를 이어나갔다.
“놀… 놀란 거라니까?! 누구나 그랬을 거라고!!! 요…”
“뭐 됐어. 나도 즐기고 있으니까.”
“하아… 이상한 사람은 아니라서 다행이다…”
“이상하지 않다고?”
“죄송해요!!!”
그녀가 실실 웃으며 얼굴을 수평으로 찢어 속을 보여주자, 메어는 기겁하며 눈을 감았다. 물론 이불과 베개로 이루어진, 붉은빛의 침구일 뿐이다.
“이제 제대로 소개를 해야겠지? 너부터 해 봐.”
“저… 아니 나? 난 가지색, 마니악 메어라고 해. 이쪽은 바유야.”
“어디서 뭘 하다 여기까지 온 거야?”
“그게 좀 긴데…”
“그럼 됐어.”
“엥?”
“이 몸은 악몽의 슐리. 검붉은색이지. 경비대 제1지부에 온 걸 환영해.”
슐리가 흔들의자에 앉았다. 메어의 얼굴이 밝아지며 눈이 번쩍이기 시작했다. 곧바로 그녀는 물어보고 싶은, 궁금한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슐리… 아니 슐리씨, 안녕하세요! 전 수호자를 목표로 하고 있어요, 경비대도 좋아요! 어떻게 하면 수호자가 될 수 있나요?”
“예의 없다가… 예의 바르다가… 거기다 시끄럽고… 네가 애냐?”
“원래 이렇다. 용서를 구한다.”
바유가 땀을 흘리며 슐리에게 고개를 숙였다. 속사포처럼 궁금증을 풀어내던 그녀에게 슐리의 촉수가 뻗어 나갔다. 촉수에 달린 눈과 눈이 마주친 메어는 또 소스라치게 놀라며 문쪽으로 펄쩍 뛰어갔다.
“죄송해요!!!”
“됐어, 그만!!! 안 할 테니까. 천천히, 하나씩 말해.”
메어는 흥분을 가라앉히고 심호흡을 한 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여기가 제1지부라는 거죠.”
“맞아. 근데?”
“위에 있던 건물들, 불타고 있는 걸요.”
“아 괜찮아. 그건 병풍이야.”
“대원분들은요? 다들 괜찮나요?”
“대원이라니… 동쪽 경비대는 원래부터 나 혼자였는걸?”
그녀의 말에 메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 넓은 동쪽을 전부요?“
“도와주는 방랑객들이 있거든. 무엇보다 난 강해. 치즈도 이 몸한텐 한 수 접어야지.“
“말도 안되잖아요! 그분은 최강의 수호자님이신걸요!”
“최강의 수호자… 풉… 어째 하는 말마다 그렇게 유치한 거야?”
“메어는 영웅을 동경한다. 태어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그런 의지로 살아왔지.”
“그래 보이네.”
슐리가 웃으며 바유와 대화를 주고받았다.
“음…”
메어가 이리저리 움직이기 시작했다. 슐리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그녀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야?”
“저기… 앉을 곳 있나요?”
“저 탁자에 앉아. 좀 높겠지만.“
“어… 네.”
그녀는 탁자에 낑낑 올라가 앉았다. 흔들의자에 앉아 앞뒤로 그네를 타는 슐리, 거추장스럽게 높은 탁자에 올라간 메어는 우스꽝스러운 분위기를 내보이고 있었다. 슐리는 그녀에게 여러 가지 질문을 던지며 얘기를 이어갔다.
“자영과 만났다고? 거기다가 널 제자로 뒀다고? 그럴 애가 아닌데.“
“차갑고 매서웠지만, 어딘가는 친절했어요. 말 없는 스승님이자 친구 같았죠.“
계속해서 메어는 자영과 있었던 일, 그리고 그녀와 헤어질 수밖에 없었던 나날을 이야기했다. 과거를 떠올릴수록 그녀의 눈시울은 점점 붉어져 갔다.
“안타깝긴 하네. 그래서 티틀에게서 쫓겨서 여기까지 와서… 도움을 구하게 되었다, 이거군.”
“맞아요.”
슐리는 흔들의자에서 일어나 메어를 향해 다가가며 말했다.
“미안한데, 여기서 도와줄 일은 없을 것 같네. 난 꽤 바빠.”
“하… 하지만…”
“아까까지만 해도 위에서 전투가 있었어. 불타는 기사였나, 뭐 별건 아니었지만… 아무튼 그만큼 지금 정세는 어지러워. 나도 쉴 땐 쉬고 일해야 한다고.”
“실례지만… 부탁합니다!!! 절 제자로 받아주세요. 슐리씨는 강할 테니까요! 저도 수호자와 경비대님들을 돕고 싶어요!”
“메어! 또 아이 같은 짓이냐!!!”
슐리가 언짢은 표정을 지으며 그녀를 쳐다봤다.
“막무가내네. 난 자영같이 친절한 사람이 아니야. 그리고 시간도 많지 않다고. 이 몸이 널 가르쳐야 할 이유를 몸소 증명해보던가.“
“만족하게 할 수 있다면 받아주실 건가요?”
“봐서.”
메어는 앞장서서 슐리와 함께 방 밖으로 나가 지상으로 향했다. 그녀들의 얘기가 오간 사이 위에 있던 구조물들은 전부 타버려 뼈대만 남아 있었다. 슐리는 메어의 반대 방향으로 걸어가며 거리를 벌리며 외쳤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네 전력을 내봐. 그러면…”
메어는 슐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달려오기 시작했다. 그녀는 황당해하며 몸에 둘린 침대를 풀어 날카롭게 뻗치기 시작했다. 이어 메어의 의지색 오른쪽 발차기가 얼굴을 향해 날아오자, 그녀는 얼굴을 변형해 손쉽게 공격을 회피했다. 그 찰나 메어는 뻗은 발을 굽혀 슐리의 촉수를 잡은 뒤, 다시 한번 의지색을 흘려 넣었다. 슐리는 그대로 감전되며 몸부림쳤다.
“야! 반칙이잖아, 말도 없이 오는 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라고 하셨잖아요?”
메어가 수신호를 주자 바유와 옅은 이들이 날아가 슐리의 몸 이곳저곳을 잡았다. 그녀가 몸을 변형해 그들을 뿌리치자, 그 사이로 메어가 다가와 슐리의 얼굴과 몸에 달린 안구에 흙먼지를 흩뿌렸다. 그녀가 다시 한번 몸을 잡으려고 할 때. 슐리의 몸이 완전히 풀어 헤쳐지며 메어를 향해 작은 침 하나를 쏘았다. 그것은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날아가 메어의 목에 적중했다. 메어가 눈을 크게 뜨다, 점점 의식을 잃어가더니 이내 철퍼덕 쓰러졌다.
“메어!!”
“괜찮아, 아마 편안한 꿈을 꾸고 있을걸. 이 아이가 깨어나면 말해줘. 합격이라고.”
슐리의 몸이 다시 인간의 형상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만족한듯한 표정을 짓고 머리카락을 뻗은 뒤, 메어를 잡아 편안한 자세로 눕혔다.
“마음에 흔들림이 없고, 목표도 확실해. 그리고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도 잘 아네. 바로 수련을… 아니지, 일단 심부름부터 좀 시켜볼까?“
슐리의 키득거리는 소리와 함께 자정색이 드리우기 시작했다.